본문으로 바로가기 대메뉴로 바로가기 서브메뉴로 바로가기

유교이야기

  • 전시체험안내
  • 16C 안동가는길
  • 유교이야기
전시체험관 안내
confucianismland

유교랜드 16C 안동가는길 유교이야기입니다.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는 춘추시대 중국 노나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3살때 아버지를 17살 때 어머니를 여읜 공자는 젊은 날 창고지기나 목장지기 같은 힘든 일을 하며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학문을 닦았고, 점차 현명한 분으로 이름이 나서 많은 제자들이 찾아와 가르침을 구했답니다.
그 뒤 공자는 노나라의 법무장관 자리까지 오르셨지만, 노나라의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이에 실망해 벼슬을 버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이상적인 정치를 펼칠 곳을 찾으셨지요.
그러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와 여생을 제자들의 교육에 전념하셨습니다.
공자가 돌아가신 뒤 제자들이 공자의 가르침을 널리 알려 유교가 크게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생전에 공자가 하신 말씀을 모아 책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논어』입니다.

우리나라 유교는 어떻게 발전했나요?

  • 우리나라에서 유교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국의 왕들은 유교사상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치·교육·제도 등 각종 분야에 유교사상을 적용하여 나라를 발전시켰습니다. 삼국통일의 원동력이었던 신라 화랑들의 계율인 ‘세속오계’를 보면 임금에 충성하고(事君以忠), 부모에 효도하고(事親以孝), 친구의 믿음으로 사귀고(交友以信),전쟁에 나가 물러서지 않는(臨戰無退) 등 유교의 삼강오륜에 크게 영향 받았음을 알 수 있는 한편, 신라보다도 일찍 유교를 받아들였던 백제는 일본으로 유교를 전파하기도 했습니다.

유교의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 공자님은 무엇보다’인(仁)’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인은 사람(人)과 2(二), 곧 두 사람을 뜻하는 글자이며, 두 사람이 서로 사귈때 그 사이에 흐르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이지요. 사랑은 다른 종교에서도 다 하는이야기 아니냐고요? 하지만 ‘모든 생명에 자비를 베푼다’거나 ‘만인을 평등하게 사랑한다’는 건 실제로는 어려운 얘기지요. 여러분은 옆집 아줌마를 어머니와 똑같이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유교에서는 가족부터 먼저 사랑 하라고 가르치지요. 내 부모님을 잘 모시면 저절로 다른 어른들께도 공손해지고, 친구와 잘 지내다 보면 친구의 친구와도 친하게 되지 않던가요?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을 베풀기 시작해서 그 마음을 남에게 까지 넓히고 온 세상으로 펼쳐 나가는게 유교의 사랑이랍니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들어온건 언제인가요?

  • 고려 시대에 들어 과거제도가 시행되어 유교에 대한 지식을 시험해 관료를 뽑게 되면서 유교는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고려 말에는 기존의 유교사상을 철학적으로 완성시킨 성리학이 들어와 조선을 건국하고 새로운 제도와 문화를 창달하는 원동력이 되었지요. 한편 길재 등 고려에 충의를 지키고자 했던 선비들은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학문을 연구하며 제자들을 키웠는데 권세를 천하게 보고 불의를 미워하는 이들의 태도는 이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작풍을 만들어놨습니다.
  • 조선 중기에 들어 조선의 성리학은 서경덕, 이언적, 이황, 이이, 조식 등의 학자들에 의해 중국의 성리학을 넘어서 인간의 본질과 진리에 대해 주체적으로 파악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한편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정약용, 이익, 우형원 등은 학문이 백성의 삶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정치, 경제, 과학 등 사회의 모든 부분을 실질적으로 연구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실학을 발전시켰습니다.
  • 왕도정치를 추구한 유교의 아성맹자 성리학의 기반을 다진 주희

유교는 뭔가요?

  • 유학(儒學)·유교(儒敎)라고 할 때의 ‘儒(유)’는 공자의 가르침과 정신을 따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儒(유)’자는 원래 부드럽다, 스며들다, 윤택하다는 뜻이지요. 그 후 점차 옛 성현들이 가르친 도리를 부드러운 모습으로 남에게 가르쳐 마음에 젖어들게 하는 사람, 즉 교육자라는 또는 선비라고 한답니다.
    결론적으로 유교는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을 수양하여 훌륭한 인격을 갖춘 뒤 다른 사람에게 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온 세상을 평안하게 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적약용
  • 이상국가를 꿈꾼 실학자
    정약용
  • 다산 정약용은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로서, 16세에 이익의 저서를 접하며 실학에 눈을 뜬 그는 29세에 대과에 합격해 관직이 진출했습니다.
    그는 정조 임금의 신임을 받으며 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수원 화성을 설계하는 등 활약하였지만, 천주교 박해에 휘말려 긴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사회 문제들을 개혁할 방안을 연구하였고, 상공업의 진흥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켜 부강한 나라를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남긴 저서는 500여 권에 달하는 이는 귀양살이라는 고난까지도 학문을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노력을 거듭한 그는 성실함에서 비록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이이
  • 왕도정치를 이룩하려 한 개혁가
    이이
  • 율곡 이이는 현모양처로 유명한 신사임당의 아들로 13세에 진사시에 합격한 신동이었습니다.
    그러나 16세 어머니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 19세에 절에 들어가 승려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년 뒤 환속한 그는 29세에 대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진출하였고, 당시 사회의 문제를 고치기 위해 많은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당시 어지러운 정치 현실에 실망한 선비들은 관직을 마다하고 학문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지만, 이이는 바른 정치를 펼치지 못하면 선비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 여겼지요.
    비록 그가 내놓은 정책들은 생전에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임진왜란 이후 사회를 개혁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 이황
  • 조선 성리학의 아버지
    이황
  • 퇴계 이황은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을 깊이 연구해 조선 성리학의 틀을 잡은 대학자입니다.
    그는 34세 때 과거에 합격해 여러 관직을 거친 뒤 49세에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인 안동에 은거하며 성리학 연구에 집중하였고 1561년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하기에 열중하였습니다.
    이황은 도덕 원리인 이(珥)가 변치 않는 우주의 중심이라 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경(敬)의 자세를 강조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학문은 유성룡 등에게 이어져 영남학파를 형성하고 멀리 일본까지 전해 졌습니다.

이 콘텐츠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 별5
  • 별4
  • 별3
  • 별2
  • 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