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선비촌
체험안내
“1592년 10월 충의가 빛나는 진주성으로”
나라의 위기에 몸을 사리지 않고, 솔선수범하는 행동이야말로 진정 충성스럽고, 의로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럼 선비들의 충의가 빛났던 진주대첩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전시안내




주제
진주성을 사수하라
진주성을 사수하라

임진왜란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알려진 진주성 전투를 세트로 연출해놓았습니다.
진주대첩은 한산도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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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진주성전투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에 일어난 전투이다. 이 전투는 권율의 행주대첩과 이순신의 한산도대첩과 함께 3대 대첩이라고 불립니다. -
제2차 진주성전투
1593년 음력 6월 22일부터 같은달 29일까지 진주성에서 3천여명의 조선군과 7만여명의 민간인 그리고 10만여명의 일본군과의 벌어진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진주 목사 서예원을 비롯하여, 김천일, 최경회 등 대부분의 지도부가 남강에 투신 하거나 전사 하였습니다.
대포 쏘기

진주성 전투에 사용된 대포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진주성의 영웅들
의병장 곽재우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입니다.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곽월(郭越)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로 경상남도 의령(宜寧)
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585년(선조 18) 별시(別試)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답안지에 왕의 뜻에 거슬린 글귀가 있었기 때문에 파방(罷榜)되었습니다. 이 일로 과거를 포기하고 은거하다가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의주(義州)로 피난하자 같은 달 22일 제일 먼저 의령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의병의 군세는 더욱 커져 2천에 달하였고, 5월에는 함안군을 수복하고 정암진(鼎巖津:솥바위나루) 도하 작전을 전개한 왜병을 맞아 싸워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때 홍의(紅衣)를 입고 선두에서 많은 왜적을 무찔렀으므로 홍의장군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조정에서는 이 공을 인정하여 그해 7월 유곡찰방(幽谷察訪)에 임명하였다가 다시 형조정랑을 제수하였습니다. 10월에는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승진하여 조방장(助防將)을 겸임하다가 성주목사(星州牧使)에 임명되어 악견산성(岳堅山城) 등 성지를 수축하였습니다. 또한 1차 진주성전투에 휘하의 병사들을 보내어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승리하는데 조력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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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김천일 |
본관언양. 자사중(士重). 호건재(健齋) · 극념당(克念堂). 시호문열(文烈). 나주출생. 이항(李恒)의 문인.
삼장사(三壯士)의 한사람. 1573년(선조6)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가 되고, 1578년 임실현감(任實縣監)을 지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나주에 있다가 고경명(高敬命) ·박광옥(朴光玉) ·최경회(崔慶會)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선조가 피란 간 평안도를 향해 가다가, 왜적과 싸우면서 수원성(水原城)을 거쳐 강화도로 들어갔습니다. 그 공으로 판결사(判決事)가 되고 창의사(倡義使)의 호를 받았습니다. 왜적에게 점령된 서울에 결사대를 잠입시켜 싸우고, 한강변의 여러 적진을 급습하는 등 크게 활약하였습 니다. 다음해 정월 명나라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의 군대가 개성을 향해 남진(南進)할 때, 그들을 도와 도로 (道路) ·지세(地勢) 및 적정(敵情) 등을 알려 작전을 도왔습니다. 또 왜군이 남쪽으로 퇴각하자, 절도사 최경회 등과 함께 진주성晋(州城)을 사수(死守)하였습니다. 그 뒤 진주성을 지킬 때 백병전이 벌어져, 화살이 떨어지고 창검이 부러져 대나무창으로 응전하였습니다. 마침내 성이 함락되자 아들 상건(象乾)과 남강(南江)에 투신자결하였습니다. |
의병장 고종후 |
본관장흥(長興). 자도충(道?). 호준봉(準峰). 시호효열(孝烈). 1570년(선조3) 진사가 되고, 1577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현령(縣令)에 이르렀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아버지 경명(敬命)을 따라 의병을 일으키고, 금산(錦山)싸움에서 아버지와 동생 인후 (因厚)를 잃었습니다. 이듬해 다시 의병을 일으켜 스스로 복수의 병장(復讐義兵將)이라 칭하고 여러곳에서 싸웠고, 위급해진 진주성(晉州城)에 들어가 성을 지켰으며 성이 왜병에게 함락될 때 김천일(金千鎰) · 최경 회(崔慶會) 등과 함께 남강(南江)에 몸을 던져 죽었는데, 세상에서는 그의 3부자(三父子)를 3장사(三壯士) 라 불렀습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광주(光州)의 포충사(褒忠祠)와 진주(晉州)의 충민사(忠愍祠)에 배향되었습니다. |
의병장 강희열 |
조선 선조 때의 의병장. 본관은 진주. 희열(希說)이라고도 합니다. 부사우복(遇福)의 아들이며, 전라도 순천 출신의 무사로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인 희복(熙復) 과 더불어 창의하여 고경명(高敬命)을 따라 금산전투에 참전하여 패배하자, 잠시 향리인 순천으로 돌아갔 습니다. 다시 의병 2백여명을 모집, 훈련 시켜 비(飛)자를 군표(軍標)로 삼고 남원을 공격하였으며, 1593년 6월 진주성을 왜군이 포위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이끌고 입성하여 김천일(金千鎰) ·최경회(崔慶會) ·황진 (黃進) 등과 더불어 끝까지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해지고 성이 함락 되기에 이르자 적진으로 돌격, 장렬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봉사(奉事)에 추증되고, 진주충민사(忠愍祠)에 제향되었습니다. |
의병장 이만도 |
조선 후기의 문신 ·독립운동가로 을미사변 때 안동에서 의병을 모아 일제에 항거하였습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5적신(五賊臣)의 처형을 상소했으며 국권피탈 때 24일간 단식하다가 순국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습니다. |
의병장 고경명 |
조선 중기 선조 때의 문인 ·의병장. 임진왜란 때 금산싸움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습니다. 좌찬성에 추증되었습니다. 문집《제봉집》 등이 있습니다. |
돌격! 왜군을 기습하라
모형 전자화살과 움직이는 말을 타고 왜군들을 물리치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왜적이 진주성을 향해 몰려오고 있습니다! 곽재우 장군의 의병들이 적을 기습하려 하니 우리도 함께 나가 왜적을 물리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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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01 말에 올라 안전띠를 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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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02 시작되면 쇄뇌를 들고 빛을 쏘아 적을 공격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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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03 체험 중에 안전벨트를 풀거나 말에서 내리면 안됩니다.
성벽쌓기
전쟁으로 무너진 진주성벽을 다시 쌓아보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왜군의 공격으로 성벽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어서 마름돌을 들고 허물어진 곳을 보수해 진주성을 지킵시다.
조선, 선비가 다스린 나라
조선, 선비가 다스린 나라
임금은 나라에서 제일 높은 분이니 뭐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요?
천만의 말씀! 세종대왕께서 아무리 훌륭한 임금이셨다 해도 집현전 학자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한글을 창제하셨겠습니까? 또 연산군 같은 폭군에게 신하들이 무조건 복종하기만 한다면 나라 꼴이 끔찍하겠지요. 그렇기에 임금을 중심으로 여러 선비들이 지혜를 모아 나라를 다스려나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럼 조선의 선비들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신문고를 울려라
1401년(조선 태종 1)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직접 해결하여 줄 목적으로 대궐 밖 문루(門樓) 위에 달았던 북.
조선 초기에 상소 ·고발하는 제도는 법제화되어 있었으나, 최후의 항고(抗告) ·직접고발 시설의 하나로 신문고를 설치하여, 임금의 직속인 의금부당직청(義禁府當直廳)에서 이를 주관, 북이 울리는 소리를 임금이 직접 듣고 북을 친 자의 억울한 사연을 접수 처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즉,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자는 서울에서는 주장관(主掌官), 지방에서는 관찰사에게 신고하여 사헌부(司憲府)에서 이를 해결하도록 하였는데, 이 기관에서 해결이 안 되는 경우에는 신문고를 직접 울리게 하였습니다.
관직 익히기
의정부 |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기관. 영의정과 좌·우의정이 안건을 논의한 뒤 임금의 허가를 받아 육조에 하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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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六曹) |
국가의 정무(政務)를 나누어 맡아보는 행정부서 이조(吏曹) : 관리의 인사 호조(戶曹) : 재정 예조(禮曹) : 의례·교육·외교 병조(兵曹) : 국방 형조(刑曹) : 사법 공조(工曹) : 건설 및 기타산업 |
승정원(承政院) | 임금의 비서실 |
삼사(三司) |
홍문관(弘文館) : 임금의 자문기관 사간원(司諫院) : 임금이 잘못된 정치를 하면 비판함 사헌부(司憲府) : 관리들을 감찰하는 기관 |
의금부(義禁府) | 국왕 직속 사법 기관 |
포도청(捕盜廳) | 범죄자 체포 및 처벌 |
춘추관(春秋館) | 역사 편찬 기관 |
충(忠)이란? 의(義)란?
충(忠)이란?'충(忠)'이라는 글자는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속내에서 우러난 성실한 마음. 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마음이란 뜻이지요. 충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하여 믿음직한 사람입니다忠信. 그런 사람은 남이나 어떤 일을 대함에 있어 정성을 다하지요忠誠. 또한 나를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올곧게 행동하는 것은 충의忠義라고 합니다.
의(義)란?'의(義)'라는 글자는 '양(羊)'과 '아(我)'를 합한 것입니다. 훌륭한 가죽옷(羊)을 입고 몸가짐(我)을 단정한 한 모습, 즉 바른 태도와 행실을 나타내지요. 또한 이 글자는 자신(我)을 희생(羊)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즉 의는 사사로운 이익을 버리고 모두를 위해 지켜야 할 올바른 도리를 나타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정의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