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선비촌
체험안내
“고창을 지켜라!”
서기 930년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신라)의 견훤이 고창(古昌)(현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맞붙은 전투이며, 사실상 후삼국 시대 최후의 승자를 결정지은 분수령이된 전투였다.
그럼 선비들의 충의가 빛났던 고창전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전시안내




주제
고창전투
고창을 사수하라

시기 : 929년 ~ 930년
장소 : 고창(안동시 시내) 전역
교전국 : 고려(공격), 승 | 신라-후백제 연합(방어), 패
결과 : 고려의 승리
영향 : 고려의 후삼국 주도권 장악, 후백제의 쇠퇴
고창 전투 이후 고려에서는 동쪽(東, 신라)을 평안(安)케 했다는 의미로 고창(古昌)을 안동(安東)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름 때문에 헷갈릴 수 있지만 보다시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과는 전혀 상관없다. 한자로 봐도 완전히 다르고, 그 곳은 후백제의 중심지인 완산주 소속으로 내내 후백제 영역이었다.
왕건의 입지 회복이 이뤄진 곳이라 고려 조정에서는 안동을 매우 귀하게 여겨서, 안동에 고려 4경(개경(개성), 서경(평양), 동경(경주), 남경(서울)) 다음가는 대도호부를 하사하였다. 이는 조선시대에까지 이어져 대한제국 선포 직전인 1897년까지 무려 960년 동안 안동은 대도호부 지위를 유지하였다.
대포 쏘기

고창의 영웅들
왕건 |
18년 개성 출신 왕건이 건국하여 936년 후삼국을 통합한 뒤 1392년 멸망 때까지 34명의 왕씨 출신 국왕이 474년 동안 통치한 왕조 왕건이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고창 지방의 재지호족(在地豪族)들의 적극적인 협조에 힘입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고창전투는 한반도 재통일(再統一)의 최종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투였으므로, 패배한 후백제는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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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평 | 고려전기 대광, 아보 등을 역임한 무신 / 본관은 안동(安東). 930년(태조 13) 태조가 견훤(甄萱)과 싸울 때, 고창(안동부로 승격되기 이전)의 성추 김선평은 권행(權幸)·장길(張吉)과 더불어 태조를 도운 공으로 대광(大匡)에 임명되었다. 뒤에 벼슬이 아보(亞父)에 이르렀다. |
권행 |
고려 전기에, 고려와 후백제의 고창전투에서 고려군에 가담하여 공을 세워, 태조 왕건으로부터 권씨 성을 하사받았던 호족 · 공신 / 본관은 안동(安東). 안동권씨의 시조이다. 『고려사(高麗史)』 태조세가에는 ‘행(行)’이라 하였다. 본성은 김(金)이라고 한다 / 930년(태조 13)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고창군(古昌郡: 경상북도 안동(安東)의 옛이름)을 포위하여 전세가 고려에게 매우 불리하였다. 이 때 유금필(庾黔弼)의 주장으로 공격을 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 승리는 당시 고창지방 호족으로 추측되는 이들이 협조를 잘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전공으로 태조는 안동을 본관으로 삼게 하고, 대상(大相)이라는 관계를 내려주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태사아부(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亞父)로 봉해진 기록도 보인다. |
돌격! 전투에 참여하자!
모형 전자화살과 움직이는 말을 타고 견훤의 군사들을 물리치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견훤의 군사들이 고창을 향해 몰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왕건을 도와 견훤의 군사들을 물리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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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01 말에 올라 안전띠를 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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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02 시작되면 쇄뇌를 들고 빛을 쏘아 적을 공격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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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03 체험 중에 안전벨트를 풀거나 말에서 내리면 안됩니다.
전쟁터를 수리하라!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 마을을 지킵시다.

여러분!
견훤의 공격으로 우리 마을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어서 마름돌을 들고 허물어진 곳을 보수해 고창을 지킵시다.
조선, 선비가 다스린 나라
조선, 선비가 다스린 나라
임금은 나라에서 제일 높은 분이니 뭐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요?
천만의 말씀! 세종대왕께서 아무리 훌륭한 임금이셨다 해도 집현전 학자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한글을 창제하셨겠습니까? 또 연산군 같은 폭군에게 신하들이 무조건 복종하기만 한다면 나라 꼴이 끔찍하겠지요. 그렇기에 임금을 중심으로 여러 선비들이 지혜를 모아 나라를 다스려나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럼 조선의 선비들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신문고를 울려라
1401년(조선 태종 1)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직접 해결하여 줄 목적으로 대궐 밖 문루(門樓) 위에 달았던 북.
조선 초기에 상소 ·고발하는 제도는 법제화되어 있었으나, 최후의 항고(抗告) ·직접고발 시설의 하나로 신문고를 설치하여, 임금의 직속인 의금부당직청(義禁府當直廳)에서 이를 주관, 북이 울리는 소리를 임금이 직접 듣고 북을 친 자의 억울한 사연을 접수 처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즉,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자는 서울에서는 주장관(主掌官), 지방에서는 관찰사에게 신고하여 사헌부(司憲府)에서 이를 해결하도록 하였는데, 이 기관에서 해결이 안 되는 경우에는 신문고를 직접 울리게 하였습니다.
관직 익히기
의정부 |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기관. 영의정과 좌·우의정이 안건을 논의한 뒤 임금의 허가를 받아 육조에 하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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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六曹) |
국가의 정무(政務)를 나누어 맡아보는 행정부서 이조(吏曹) : 관리의 인사 호조(戶曹) : 재정 예조(禮曹) : 의례·교육·외교 병조(兵曹) : 국방 형조(刑曹) : 사법 공조(工曹) : 건설 및 기타산업 |
승정원(承政院) | 임금의 비서실 |
삼사(三司) |
홍문관(弘文館) : 임금의 자문기관 사간원(司諫院) : 임금이 잘못된 정치를 하면 비판함 사헌부(司憲府) : 관리들을 감찰하는 기관 |
의금부(義禁府) | 국왕 직속 사법 기관 |
포도청(捕盜廳) | 범죄자 체포 및 처벌 |
춘추관(春秋館) | 역사 편찬 기관 |
충(忠)이란? 의(義)란?
충(忠)이란?'충(忠)'이라는 글자는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속내에서 우러난 성실한 마음. 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마음이란 뜻이지요. 충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하여 믿음직한 사람입니다忠信. 그런 사람은 남이나 어떤 일을 대함에 있어 정성을 다하지요忠誠. 또한 나를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올곧게 행동하는 것은 충의忠義라고 합니다.
의(義)란?'의(義)'라는 글자는 '양(羊)'과 '아(我)'를 합한 것입니다. 훌륭한 가죽옷(羊)을 입고 몸가짐(我)을 단정한 한 모습, 즉 바른 태도와 행실을 나타내지요. 또한 이 글자는 자신(我)을 희생(羊)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즉 의는 사사로운 이익을 버리고 모두를 위해 지켜야 할 올바른 도리를 나타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정의라고나 할까요.